12월, 2021의 게시물 표시

괴력난신怪力亂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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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 선생님께선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   논어.술이.21. 子不語 : 怪 · 力 · 亂 · 神 .   단옥재는 글자 ‘ 어 語 ’ 에 ‘ 상대와 토론하여 시비를 가리는 ’ 의미가 있다고 풀이한다 . 그러므로 공자는 이 네 가지에 대해 단지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학문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   상나라 왕 – 정인 집단의 우두머리   상나라 시대는 주술과 제사의 시대였다 . 만사 점을 쳐 하늘의 뜻을 물었고 , 다섯 가지 정기적 제사를 정교하게 한 해에 딱 들어맞게 배치했기 때문에 상나라는 한 해를 ‘ 사 祀 ’ 라고 표기했다 . 이런 표기 관습은 주나라 초기에도 여전히 잔존재 유명한 「홍범」의 첫 문장도 “13 년째 되는 해 ( 무 ) 왕이 기자를 방문했다 ( 惟十有三祀 …)” 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   20 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상나라의 도읍 은허의 발굴이 시작되었고 이곳에서 수 만개의 문자가 쓰여진 갑골들이 발견되었는데 학자들은 이 수많은 갑골들의 시대를 파악하고 분류할 때 점을 친 ‘ 정인 貞人 ’ 의 이름을 가지고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이 효과적임을 알아챘다 . 정인은 왕명을 받아 점을 치고 그 결과로 나온 조짐을 보고 해석하는 권위를 가진 무당이다 . 학자에 따라서 상나라 시대의 왕은 이 정인 집단의 우두머리 무당으로 보는 이도 있다 .   상나라의 왕은 죽어서 제사를 받은 대상인 동시에 신에 버금가는 존재로서 죽더라도 하늘의 상제 옆에 자리잡아 땅의 왕과 하늘의 상제를 매개하는 두 가지 지위를 가진 존재였다 . 이런 사고방식은 주나라 초까지도 잔존하여 「금등편」에서 주공은 상제 옆에 계신 문왕과 선조들에게 병환에 든 무왕 대신 자신의 목숨을 가져갈 것을 호소 심지어 협박했던 것이다 . 이런 사고의 틀에서 본다면 상나라의 왕은 직접 상제와 교통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여기엔 선왕이라는 매개가 ...

솔론과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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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염옹은 윗사람을 시킬만한 사람이다 . ” 6.1.   子曰 :  “ 雍 也可使南面 . ” 솔론과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옹 雍 의 이름은 염옹 冉雍 이며 , 공자보다 대략 29 세 연하였다 . 남면 南面 은 남쪽을 바라보고 자리한다는 뜻으로서 예로부터 천자나 군주의 지위를 의미한다 . 이외 어떤 회합이나 자리에서 가장 윗사람이 앉는 자리이기도 하다 .   기원전 594 년 - 중국은 이때 춘추시대 노나라 성공 대에 해당한다 . – 거의 만장일치로 지도자로 추대된 솔론이 도시국가 아테네에 일대 개혁을 실시했다 . 자비로 말과 전차를 구비할 수 있는 제 1 계급 펜타코시오메딤노이 (Pentakosiomedimnoi) 에서부터 아무런 재산이 없는 4 계급 테테스 (Thetes) 까지 이렇게 아테네 시민들을 네 계급으로 구분지었다 . 시민을 보유한 재산의 규모로 등급화하고 참정권의 범위와 가부를 결정한 것이다 . 이들 중 최하위 계급에 속한 시민들은 어떤 공직도 맡을 수 없었으나 민회와 재판에 출석하여 투표할 권리는 주어졌다 . 이딴 것이 뭔 혁신이고 개혁인가라고 말한다면 인류가 거쳐온 지난한 역사를 너무 무시하는 성급함이다 . 솔론의 개혁은 그 이전 귀족만 참정권을 가졌던 아네테를 개인의 능력으로 재산을 모을 수만 있다면 참정권을 부여하는 사회 , 귀족의 정치 독점을 제거한 일대 진전이기 때문이다 . 솔론 그로부터 대략 100 년 정도 지난 기원전 487/486 년에 또 하나의 혁신이 아테네 정치계에 도입된다 . 법 앞의 평등 ‘ 이소미아 ’ 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클레이스테네스는 아르콘을 제외한 모든 공직을 선출제에서 추첨제로 변경한다 . 이 개혁으로 아테네 시민권을 보유한 자라면 누구나 뺑뺑이를 돌려 공무원이 될 수 있었는데 다소 곤란한 점은 수당이 없다는 사실이다 . 급여가 없는 사회봉사활동이란 뜻이다 . 이런 경제적 곤란을 견딜 수만 있다면 혹은 스폰서를 얻을 수 있다면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