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22의 게시물 표시

괴력난신怪力亂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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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 선생님께선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   논어.술이.21. 子不語 : 怪 · 力 · 亂 · 神 .   단옥재는 글자 ‘ 어 語 ’ 에 ‘ 상대와 토론하여 시비를 가리는 ’ 의미가 있다고 풀이한다 . 그러므로 공자는 이 네 가지에 대해 단지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학문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   상나라 왕 – 정인 집단의 우두머리   상나라 시대는 주술과 제사의 시대였다 . 만사 점을 쳐 하늘의 뜻을 물었고 , 다섯 가지 정기적 제사를 정교하게 한 해에 딱 들어맞게 배치했기 때문에 상나라는 한 해를 ‘ 사 祀 ’ 라고 표기했다 . 이런 표기 관습은 주나라 초기에도 여전히 잔존재 유명한 「홍범」의 첫 문장도 “13 년째 되는 해 ( 무 ) 왕이 기자를 방문했다 ( 惟十有三祀 …)” 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   20 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상나라의 도읍 은허의 발굴이 시작되었고 이곳에서 수 만개의 문자가 쓰여진 갑골들이 발견되었는데 학자들은 이 수많은 갑골들의 시대를 파악하고 분류할 때 점을 친 ‘ 정인 貞人 ’ 의 이름을 가지고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이 효과적임을 알아챘다 . 정인은 왕명을 받아 점을 치고 그 결과로 나온 조짐을 보고 해석하는 권위를 가진 무당이다 . 학자에 따라서 상나라 시대의 왕은 이 정인 집단의 우두머리 무당으로 보는 이도 있다 .   상나라의 왕은 죽어서 제사를 받은 대상인 동시에 신에 버금가는 존재로서 죽더라도 하늘의 상제 옆에 자리잡아 땅의 왕과 하늘의 상제를 매개하는 두 가지 지위를 가진 존재였다 . 이런 사고방식은 주나라 초까지도 잔존하여 「금등편」에서 주공은 상제 옆에 계신 문왕과 선조들에게 병환에 든 무왕 대신 자신의 목숨을 가져갈 것을 호소 심지어 협박했던 것이다 . 이런 사고의 틀에서 본다면 상나라의 왕은 직접 상제와 교통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여기엔 선왕이라는 매개가 ...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이집트의 이시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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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 삼가신 것들이 있으니 제사를 앞두고 하시는 재계 , 전쟁 그리고 질병 등이었다 .   논어.술이. 13. 子之所 慎 : 齊 , 戰 , 疾 .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이집트의 제례 아래는 기원전 5 세기경 그리스인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이시스 축제의 의례 과정을 묘사한 글이다 . 희생을 선별하고 이를 제사에서 처리하는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 제 2 권 38-41 에 해당한다 .     희생으로 사용할 소의 선정 : 이집트 ( 천병희의 번역본에선 ‘ 아이귑토스 ’ 라고 쓰지만 편의상 이집트로 쓴다 ) 인들은 황소를 에파포스 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검은 털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 황소의 혀를 잡아당겨 특정한 표지가 있는지도 검사하며 , 꼬리털도 검사해 정상적인지 살핀다 . 모든 검사에 통과한 소에는 황소의 두 뿔에 파피루스를 감고 그 위에 진흙을 칠한 후 사제의 인장 반지를 눌러 봉인한다 . 이렇게 봉인되지 않은 황소를 제사에 사용하면 사형에 처한다 . 이집트에서 흠 없는 황소와 수송아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관행이지만 암소를 제물로 바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 암소는 이시스 여신의 성수이기 때문이다 .   imagining of a procession for Isis, complete with Her shrine; art by Frederick Arthur Bridgman, mid 1800s 희생을 바치는 의식과 축제 :   희생을 의식이 진행될 제단으로 끌고 가서 불을 피우고 희생의 머리와 제단에 포도주를 뿌리며 신을 부르고 나서 희생의 멱을 따고 그 다음에는 몸통에서 머리를 잘라낸다 . 몸통은 껍질을 벗기고 머리는 저주를 퍼부은 다음 가져간다 . 황소의 머리에 퍼붓는 저주는 다음과 같다 . “ 제물을 바치는 우리에게 또는 이집트 전역에 어떤 재앙이 닥치려 하건 그것이 이 머리에 떨어지게 하소서 !” 이 관습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어떤 동물의 ...

부의 양극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 부란 것이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설령 마부노릇이라도 하겠지만 바란다고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따르겠다 .”   논어.술이.12. 子曰 : “ 富而可求也 , 雖執鞭之士 , 吾亦爲之 . 如不可求 , 從吾所好 .”   부의 양극화 초기 유가의 인식에서 경제적 풍요란 나쁜 것이 아니다 . 오히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개인의 ‘ 인 ’ 의 경지를 넘어선 공동체의 ‘ 성 ’ 의 경지이고 유가가 정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이다 . 그러나 부를 얻는 수단 , 가난을 탈피하는 방법에는 매우 엄격했다 . 그러므로 물질적 부란 누구나 얻기를 바라고 가난과 빈궁은 누구나 벗어나고 싶은 상황이지만 올바른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회피하지 않는 것이 유가의 부에 대한 일관된 태도다 .   20 년 전만 해도 개인용 제트기 시장이란 전세계에서도 극소수의 수요만 존재하는 시장이었지만 현재는 그 수요가 상당하게 증가했다 . 우리나라에서도 제트기를 직접 보유한 대기업이 적지 않게 있고 혹은 임대해서 임직원들의 해외 출장이나 급한 임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례도 제법 많다 . 해외 리서치 업계의 한 조사에 따르면 2018 년 현재 275 억 달러의 비즈니스 제트기 시장이 있고 2026 년에는 이 규모가 362 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 그럼에도 아직 ‘ 내가 제트기가 없어서 ’, 박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 그 정도로 대중화된 시장의 규모는 아니기 때문이다 . 또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스페이스 X 등 몇 개 우주개발 회사가 우주관광 대기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그 비용이 적게는 수십 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천 만 달러에 이르기도 한다 . 역시 다소 부럽기는 하나 우주여행할 돈이 없다고 박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   박탈감이란 결핍에 대한 상대적 감정이다 . 한국전쟁 직후 세계 최...

난폭한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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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 안연 顏 淵 에게 말씀하셨다 . “ 쓰임을 받으면 출사하고 버려지면 숨는다 . 오직 나와 너만 가능하다 .” 자로 子路 가 말했다 . “ 선생님께서 삼군을 지휘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 난폭한 호랑이가 황하를 건너듯 죽어도 후회를 모르는 자 , 나는 그런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다 . 일에 임하여 반드시 그 결말을 걱정하고 , 계획을 잘 세워 공적을 성취할 수 있는 인물과 함께 일할 것이다 .”   논어.술이.11. 子謂 顏 淵 曰 : “ 用之則行 , 舍之則藏 , 唯我與爾有是夫 !” 子路 曰 : “ 子行三軍 , 則誰與 ?” 子曰 : “ 暴虎馮 河 , 死而無悔者 , 吾不與也 . 必也臨事而懼 , 好謀而成者也 .”   난폭한 호랑이 공자를 비롯한 초기 유가는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 정의를 위해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내버리는 일에 찬성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 『역 易 』에서 쉼 없이 만물을 낳고 양육하는 것을 자연의 가장 큰 덕이며 또 이를 ‘ 역 易 ’ 이라 말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 나를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출사하되 그렇지 않다면 함부로 거동하지 않고 초야에 머무는 편을 택했다 .   춘추 시대 초기에 위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 선공이 아들을 위해 며느리를 얻었는데 빼어난 그녀의 미모가 그만 홀딱 빠져 자기 부인으로 삼아버렸다 . 그녀 ( 선강 ) 에게서 수와 삭이라는 두 아들을 얻었고 , 장성한 삭이 모친과 함게 이복형 급자를 모함하는 말을 도성에 퍼뜨렸다 . 풍문을 믿은 선공은 급자를 죽이려 했지만 삭의 착한 형제 수가 이를 알아채고 서형을 위해 대신 죽음을 택했지만 급자 역시 살해되었다 . 이후 삭이 즉위했다 . 삭의 숙부 격인 좌공자와 우공자는 이런 삭을 싫어해 그를 축출하고 공자검모를 옹립했지만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왕실과 제후들의 지원을 얻은 혜공이 복귀해 검모를 쫓아내고 좌우 공자는 죽여 복수했다 .   ...

천자의 성찬, ‘거擧’와 ‘불거不擧’

  조문하고 곡을 하신 날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 .   논어.술이.10. 子於是日哭 , 則不歌 .   천자의 성찬 – ‘ 거 擧 ’ 와 ‘ 불거 不 擧 ’   초나라가 강 江 나라를 멸하였다 . 진 秦 목공이 강나라를 위해 소복을 입고 정침에 머물지 않았으며 성찬을 물리고 음악도 연주하지 않았다 . 목공의 애도가 법도보다 과했기 때문에 대부가 그러지 마시라 간언을 올렸다 . 목공이 말했다 . “ 동맹이 멸망했는데 구원하지는 못할 망정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내 스스로 두려워하고 삼가는 것이다 .” ( 좌전 .6.4.6.)   천자나 제후의 성찬을 ‘ 거 擧 ’ 라 부르는데 지위에 따라 이 성찬을 차리는 육류의 종류가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 . 천자의 성찬에는 소 , 양 , 돼지 모두를 사용하고 , 제후는 소 , 경은 양과 돼지 , 대부는 돼지를 식사에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 소 , 양 , 돼지 이 세 가지를 모두 구비한 것을 ‘ 대뢰 大牢 ’, 소만 말할 때는 ‘ 특우 ’, 양과 돼지 두 가지는 ‘ 소뢰 少牢 ’, 돼지 하나는 ‘ 특생 ’ 이라고 또 구별해서 부른다 . 예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천자부터 귀족 대부까지의 식사는 ‘ 거 ’ 라 쓰고 , 그 이하는 ‘ 식 食 ’ 으로 쓴다 . 복잡하기 그지없는 예의 규정인데 실상도 예법과 같았는지는 모르겠다 . ‘ 아니다 ’ 에 한 표 .   식사 중에서도 조찬이 가장 중요한 데 점심과 저녁은 조찬에 사용하고 남은 것을 다시 조리해서 먹는 것이라고 문헌은 말한다 . 왕이나 제후는 성찬에 음악을 곁들인다 . 그런데 이 음악을 곁들이지는 않는 상황이 있는데 사법부에서 형을 집행하는 날에는 그 사람을 애석하게 여겨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 . 아마 형이란 사형 집행을 말하는 것일 테다 .   진 秦 목공은 자신과 동성의 강나라가 초나라에 의해 멸망될 때 정침에서 잠자리에 들지 않았고 또 식사 때...

화려한 부장품의 속내는 영원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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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을 당한 사람의 곁에서 음식을 드실 때 선생님께선 배불리 드신 적이 없었다 .   논어.술이.9. 子食於有喪者之側 , 未嘗飽也 .   화려한 부장품의 속내는 영원한 이별 문장의 뉘앙스는 다른 사람과 달랐다를 의미한다 . 당시의 초상집 역시 오늘날처럼 많은 조문객이 모이고 또 초상집에서 먹고 마시기를 즐겼다는 사실의 반증일 수 있다 .   천자는 칠월장을 치르고 제후들이 빠짐없이 참석한다 . 제후는 오월장을 치르고 동맹국의 제후들이 참석하고 , 대부는 삼월장을 치르고 같은 지위의 사람들이 참석하며 , 사는 이월장을 치르고 외척들이 참석한다 . 장례에 쓸 물품이 입관 전에 도달하지 못했고 , 애도하는 기간에 상주를 조문하지 못했으며 , 흉사를 예단했으므로 예가 아니다 . ( 좌전 .1.1.5.)   설사 원칙은 저랬는지 모르겠지만 실제 사례는 동일한 좌씨의 기록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 제후의 초상에는 대부와 경이 조문하지 제후가 친히 문상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고 , 심지어 천자의 장례에 제후가 참석했다는 기록도 볼 수 없다 .   1970 년대 발굴된 창사 마왕퇴 1 호 한나라 시대의 묘의 부장품은 수천 건에 달한다 . 칠기 , 옷감 , 도기 , 대나무로 만든 그릇들 , 나무로 조각한 허수아비 , 악기 , 무기 그리고 곡식 등이 있었는데 부장품들의 명칭과 수량을 기록한 죽간이 312 장이 함께 발굴되었는데 절반이 음식과 관련된 것이라 한다 . 간단히 그 내역을 소개하면 고기와 생선으로 만든 24 개의 솥에 담긴 국 ; 소금에 절이지 않은 말린 잉어 , 붕어 등 생선 한 두름 ; 소 , 사슴 , 양고기 등 말린 육포 5 두름 ; 소 , 개 , 돼지 , 사슴고기로 구운 것이 8 개 등이 고기와 관련된 주요 부장물로 적혀 있다 . 젓갈 , 채소 절임 등 9 종류 19 가지 양념이 부장되었고 , 4 가지 종류의 술이 부장되었고 , 밥과 죽 등 주식 그리고 대추 , 배...

발분하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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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발 분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 말로 설명하지 못해 답답한 지경에 이르지 않으면 일깨워주지 않는다 . 모퉁이 하나를 들어 일러주고 나머지 세 모퉁이를 돌려주지 못하면 재차 일러주지 않는다 .”   7.8. 子曰 : “ 不憤不啓 , 不悱不發 . 擧一隅 , 不以三隅反 , 則不復也 . ”   독일의 진학 시스템 8 살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 이 8 년 동안 교사는 학생의 지능과 성격 등을 관찰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한다 . 졸업할 때 부모와 면담을 통해 A 학생은 8 년 과정 , B 학생은 7 년 과정 , C 학생은 6 년 과정의 학교로 진학시킨다 . A 학생이 8 년 과정의 학교를 졸업하면 증서를 받는데 이렇게 보증한다 . ‘ 위 학생은 전인 교육을 받았으며 앞으로 어떤 전문 교육을 받더라도 충분히 수행 능력이 있다 .’ 그리고 이 학생은 법대 같은 인문 계열이든 의대 같은 자연 계열이든 어느 대학이라도 진학할 수 있다 . B 학생은 7 년 과정을 졸업한 후 보증서를 받는데 ‘ 위 학생은 대학 진학은 할 수 없지만 교양 지식을 가졌으므로 사무직과 행정직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 B 는 대학 진학은 못하지만 은행원도 , 경찰도 , 공무원도 지원할 수 있다 . C 학생은 6 년 과정을 졸업한 후 ‘ 전문 직업을 배울 수 있는 최소한의 학력은 가지고 있다 ’ 는 증서를 받는다 .   위키백과에 소개된 독일 교육 시스템을 간략히 요약한 것이다 . 우리 나이로 9 살 정도면 그의 미래의 직업은 대체로 윤곽이 잡힌다 . 우리나라의 부모 입장에선 수용하기 어려운 교육 시스템일 테다 . 물론 일부의 유연성과 융통성은 있지만 대체적으로 독일은 저런 시스템을 운용한다고 한다 .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8 년의 초급 교육 과정을 마치고 담임의 종합적 판단을 수용한다는 사실이다 . 겉모습이 괜찮아 보인다고 쉽게 남이 도입할 수는 없다 .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