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상을 당한 사람의 곁에서 음식을 드실 때 선생님께선 배불리
드신 적이 없었다.
논어.술이.9. 子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
천자는 칠월장을 치르고 제후들이 빠짐없이 참석한다. 제후는 오월장을 치르고 동맹국의 제후들이 참석하고, 대부는 삼월장을 치르고 같은 지위의 사람들이 참석하며, 사는 이월장을 치르고 외척들이 참석한다. 장례에 쓸 물품이 입관 전에 도달하지 못했고, 애도하는 기간에 상주를 조문하지 못했으며, 흉사를 예단했으므로 예가 아니다. (좌전.1.1.5.)
설사 원칙은 저랬는지 모르겠지만 실제 사례는 동일한 좌씨의 기록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제후의 초상에는 대부와 경이 조문하지 제후가 친히 문상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고, 심지어 천자의 장례에 제후가 참석했다는 기록도 볼 수 없다.
1970년대 발굴된
창사 마왕퇴 1호 한나라 시대의 묘의 부장품은 수천 건에 달한다. 칠기, 옷감, 도기, 대나무로
만든 그릇들, 나무로 조각한 허수아비, 악기, 무기 그리고 곡식 등이 있었는데 부장품들의 명칭과 수량을 기록한 죽간이 312장이
함께 발굴되었는데 절반이 음식과 관련된 것이라 한다. 간단히 그 내역을 소개하면 고기와 생선으로 만든
24개의 솥에 담긴 국; 소금에 절이지 않은 말린 잉어, 붕어 등 생선 한 두름; 소, 사슴, 양고기 등 말린 육포 5 두름; 소, 개, 돼지, 사슴고기로
구운 것이 8개 등이 고기와 관련된 주요 부장물로 적혀 있다. 젓갈, 채소 절임 등 9종류 19가지
양념이 부장되었고, 4가지 종류의 술이 부장되었고, 밥과
죽 등 주식 그리고 대추, 배, 죽순 등의 과일, 오곡의 씨앗까지 부장된 사실이 죽간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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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시대 증후을묘 관 |
부장품이란 겉모습만 보면 최소한 고대 세계에서 죽음이란 끝이라기 보다
새로운 시작의 관문이고 사후의 삶을 위해 생전과 동일한 살림을 꾸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에 숨겨진 내면은 그 정반대의 인식이 새로 자리잡았던 것은 아닐까?
전국 시대로 접어들면 무덤을 아예 살아 생전의 저택과 유사한 평면으로
구조화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내밀한 침실도 있어 부인의 시신은 남편과 같은 방에 놓인다. 손님을 맞이하는 대청(거실)도
있으며 첩의 방도 구비되어 있다. 시신이 놓인 관을 둘러싼 바깥의 곽 역시 하나의 방으로 추상화된다. 증후을묘에서 발굴된 증나라 군주의 곽을 보면 창문도 있고 방문 밖에서 호위하는 무사들도 그려져 있다. 같은 묘에서 발굴된 편종 세트의 규모와 보존 상태는 현재도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양호하다.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이 딸을 시집보낼 때는 상당한 지참금을 함께 보낸다. 이 행위를 거칠게 해석하면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것’이다. 딸려보낸 지참금 이외에는 더 줄 것이 없으니 행여나 다른 생각
하지 말라는 의미다. 팔켄하우젠은 전국시대 이후로 묘의 양식이 바뀐 것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하고
있는데 바로 죽은 자 보다는 산 자들의 공동체를 우선하게 된 인식의 변화의 결과라고 본다. 마치 지참금처럼
사후의 삶을 위해 충분한 살림을 꾸려줄 테니 딴 생각, 즉 미련을 남겨 귀신이 되어 이승을 헤매지 말고
사후 세계에 적응해 잘 살라는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신종추원’(논어.1.9.)은 공자의 말이 아니라 전국 시대를 살았던 그의 어린
제자 증삼이 한 말이다. 어쩌면 이 말은 망자에 대한 선조에 대한 당대의 인식의 변화에 저항했던 증삼의
호소였을 지도 모른다. 물질이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돌아가신 네 부친과 조부와 너의 선조들을 추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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