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2의 게시물 표시

괴력난신怪力亂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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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 선생님께선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   논어.술이.21. 子不語 : 怪 · 力 · 亂 · 神 .   단옥재는 글자 ‘ 어 語 ’ 에 ‘ 상대와 토론하여 시비를 가리는 ’ 의미가 있다고 풀이한다 . 그러므로 공자는 이 네 가지에 대해 단지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학문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   상나라 왕 – 정인 집단의 우두머리   상나라 시대는 주술과 제사의 시대였다 . 만사 점을 쳐 하늘의 뜻을 물었고 , 다섯 가지 정기적 제사를 정교하게 한 해에 딱 들어맞게 배치했기 때문에 상나라는 한 해를 ‘ 사 祀 ’ 라고 표기했다 . 이런 표기 관습은 주나라 초기에도 여전히 잔존재 유명한 「홍범」의 첫 문장도 “13 년째 되는 해 ( 무 ) 왕이 기자를 방문했다 ( 惟十有三祀 …)” 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   20 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상나라의 도읍 은허의 발굴이 시작되었고 이곳에서 수 만개의 문자가 쓰여진 갑골들이 발견되었는데 학자들은 이 수많은 갑골들의 시대를 파악하고 분류할 때 점을 친 ‘ 정인 貞人 ’ 의 이름을 가지고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이 효과적임을 알아챘다 . 정인은 왕명을 받아 점을 치고 그 결과로 나온 조짐을 보고 해석하는 권위를 가진 무당이다 . 학자에 따라서 상나라 시대의 왕은 이 정인 집단의 우두머리 무당으로 보는 이도 있다 .   상나라의 왕은 죽어서 제사를 받은 대상인 동시에 신에 버금가는 존재로서 죽더라도 하늘의 상제 옆에 자리잡아 땅의 왕과 하늘의 상제를 매개하는 두 가지 지위를 가진 존재였다 . 이런 사고방식은 주나라 초까지도 잔존하여 「금등편」에서 주공은 상제 옆에 계신 문왕과 선조들에게 병환에 든 무왕 대신 자신의 목숨을 가져갈 것을 호소 심지어 협박했던 것이다 . 이런 사고의 틀에서 본다면 상나라의 왕은 직접 상제와 교통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여기엔 선왕이라는 매개가 ...

밭가는 소, 리우犁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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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 중궁에 대해 말씀하셨다 . “밭가는 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도 바르다면 비록 희생으로 쓰지는 않더라도 산천의 귀신이 그 녀석을 모른 척하겠느냐 ? ”   6.6. 子謂 仲弓 曰 : “ 犁牛之子 , 騂且角 . 雖欲勿用 , 山川其舍諸 ? ”   춘추시대의 제사는 전쟁과 함께 국가의 대사 중 하나로 꼽힌다. 제사에 희생으로 사용되는 소도 엄격한 기준으로 선택했다 . 얼룩소는 여기서 제외된다 . 엄격하게 선별된 소라도 길러지는 중에 뿔이나 몸에 상처가 생기면 다른 소를 점을 쳐 선택했다 . 『좌전』에는 희생으로 선택된 소의 뿔을 쥐가 갉아먹어 다시 점을 쳐 소를 선택해야했던 기사도 있다 . 헤로도투스의 『역사』에도 이집트 이시스 여신의 축제에서 소를 잡아 제를 지내는 장면을 직접 보고 서술한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잔인해서 여기에 쓰지는 않는다 .  imagining of a procession for Isis, complete with Her shrine; art by Frederick Arthur Bridgman, mid 1800s   밭가는 소 - 리우 犁牛   일하는 소 . 공자 당시에 소를 농업에 활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주나라 이전 은 / 상나라 시대에 소의 주 용도는 제사의 희생과 귀족 계급의 단백질의 원천이었지 농경에 활용하지는 않는다 . 당시엔 희생이든 육류든 잡고난 소의 어깨뼈는 거북의 껍데기와 함께 점치는 도구로 활용했을 뿐이다 . 복사에 소 백 마리를 희생으로 썼다느니 하는 내용을 봤을 때 처음에는 아까운 트랙터를 낭비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 생각해보니 소를 농경에 쓰려면 철제 농기구가 있어야 가능하다 . 『좌전』에 등장하는 당시의 상투어 ‘ 육식자 ’ 즉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란 귀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 제 환공의 침략을 목전에 둔 노나라에서 지방에 머물던 조계 / 귀 ( 사마천은 ‘ 조말 ’ 로 쓰는 ) 라는 ...

제가齊家와 치국治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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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사가 재 宰 로 일하게 되었다 . 곡식 900 의 급여를 지급하였더니 사양하였다 .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사양하지 말라 ! 가지고 가서 네 이웃과 향당에 드릴 수도 있지 않느냐 ! ” 6.5. 原思 爲之宰 , 與之粟九百 , 辭 . 子曰 : “ 毋 ! 以與爾鄰里鄕黨乎 ! ” 2012 년 MLB 와 NPB 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박찬호가 특례로 국내 프로야구계로 복귀할 때였다 .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라는 특례로 복귀 자체는 성사되었지만 막상 그의 연봉을 놓고 한화 이글스는 비록 그가 전성기는 지났지만 국내 프로야구의 상징적인 인물인 동시에 레전드인 그의 연봉을 책정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며 여기저기 언론에 일종의 떠보기를 시도했다 . 이러쿵저러쿵 하는 언론을 보다못한 박찬호는 최저 연봉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 이에 한화 이글스는 그에게 ‘ 주려고 생각했던 6 억 원 ’ 을 유소년 야구발전기금으로 내놓기로 결정한다 . 평소에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지막을 장식했으면 좋겠다라는 의사를 표현했던 그는 연봉이 국내 복귀의 관건도 아니고 또 선의의 뜻으로 결정한 일이었겠지만 선례로는 절대 좋지 않은 결정이었다 . 선의를 선의로 생각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음을 알았어야 한다 . 그의 선의의 사례를 일종의 판례처럼 강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언제부턴지 대선 출마자에게 재산의 사회 환원에 대한 생각을 강제로 감초처럼 집어넣는다 . MB 도 여하튼 꼼수를 부려 재단을 설립해서 출자했다 . 그 재단의 지배구조 , 이사회 구성원에 대한 문제나 재단의 설립 목적에 따른 업무의 실제 수행 역할에 대해선 여전히 말이 많다 . 대선 출마자에게 재산의 기부를 강요하는 이런 사회 분위기도 좋은 선례는 아니다 . 하기싫은 일을 여론을 등에 업고 억지로 시키는 행위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쓸 데도 없다 . 애초 그럴 의사가 없는 인물은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얕은 편법만 동원할 뿐이고 실망은 국민의 몫이다 . 위선을 강요하는 사회는 되지 말자 . ...

춘추시대의 두려운 사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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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가 제나라로 사신을 가게 되자 , 염유가 자화의 모친을 위해 곡식을 요청했다 .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한 말 정도 보내거라 . ” 염유는 좀 더 요청했다 . “그럼 한 섬을 보내거라 . ” 염유는 다섯 섬의 곡식을 보냈다 .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적 赤 ( 자화 ) 이 제나라로 갈 때 윤기나는 말을 타고 , 값비싼 가죽옷을 입었다 . 내 알기로 , 군자는 시급한 일은 두루 구제하지만 부를 보태주지는 않는다 . ” 6.4. 子華 使於 齊 , 冉子 爲其母請粟 . 子曰 : “ 與之釜 . ” 請益 . 曰 : “ 與之庾 . ” 冉子 與之粟五秉 . 子曰 : “ 赤 之適 齊 也 , 乘肥馬 , 衣輕裘 . 吾聞之也 : 君子周急不繼富 . ” 고대의 도량 단위에 대한 옛 설명이 있지만 어차피 글로 써도 체감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다 . 도올이 환산한 양을 인용했다 . 공자의 말을 가지고 자화의 집안은 풍족하니 부를 보태줄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 ‘ 선별 지원 ’ 같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 자화가 공무에 임하는 태도 , 사신의 막중한 업무를 ‘ 두려워하지 않는 ’ 나태함을 허물한 것이 더 가깝다 . 그런데 왜 학단에서 문도의 가족을 챙겨야 했는지에 대해 도올은 당시 노나라의 집정인 계씨가 지출하는 비용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근거도 없지만 또 계씨의 비용 지출에 공자가 무슨 수로 관여할까 .   춘추시대의 사신길 이 시대 외교관의 사행은 예상하기 어려운 사고와 여정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 공자에게서 멀지 않았던 기원전 535 년 , 초 영왕은 화려한 장화대 건축을 지시하고 중원의 명망있는 제후를 초대하여 성대하게 낙성식을 거행해 자랑하고 싶었다 . 초나라 장화대 복원도 장화대 복원도 이 리셉션에 게스트로 점찍힌 노나라의 소공은 거의 울지경이었다 . 지도를 놓고 봐도 산동성에서 호북성 강릉까지 어마어마한 장거리 여정이다 . 노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있는 규모있는 나라만 해도 송나라 , 진나라 , 채나라가 있고 초나라의 도성 ...

송대 왕안석의 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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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공이 물었다 . “제자 중에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 ” 공자가 대답했다 . “안회라는 배우길 좋아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 그는 자신의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 불행히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 이제는 없습니다 ! 그후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 ” 6.3. 哀公 問 : “ 弟子孰爲好學 ? ” 孔子 對曰 : “ 有 顔回 者好學 , 不遷怒 , 不貳過 . 不幸短命死矣 . 今也則亡 , 未聞好學者也 . ” 생전에 별다른 업적도 없이 스승 덕분에 오늘까지 그 이름을 떨치는 안회는 행운아다 . 부럽다 .   왕안석의 ‘ 크고 강한 정부 ’ 와 기득권층의 투쟁   불천노 不遷怒 , 북송의 정이천 (1033-1107 년 ) 은 이 구절에 멋진 해석을 달고 있다 .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추니 아름다움과 추함은 피사체에 달려있는 것과 같다 . 사물에 따라 대응할 따름이니 어찌 화를 옮김이 있겠는가 ? ” 시적인 표현이다 . 자신의 마음은 명경지수와 같아서 그저 외물이 오면 반영하고 지나가면 그만일 뿐이다 . 그런데 실제로 정이천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 동시대 왕안석 (1021-1086 년 ) 이 이끈 신법당과 날카롭게 각을 세우며 그의 정책 , 개혁 , 사상을 폄하하는데 정력을 쏟은 인물이 정이천과 정명도 형제다 . 이렇듯 훌륭하신 분들도 말과 행동은 다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 인간적이다 .   왕안석은 북송의 사회 , 경제 , 교육 등의 분야에 방대하면서도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 그가 주도한 개혁의 성격을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 크고 강한 정부 ’ 를 지향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 민간의 자율에 맡기는 것을 지양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정부 주도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한 것이다 . 그는 말한다 . “ 그래서 나는 읽지 않는 책이 없다 . …… 농부와 장인에까지 묻지 않는 대상이 없다 . 그런 후에야 경전의 일반적 구조와 목적에 대해 ...

경敬과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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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궁이 자상백자에 대해 물었다 .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번거롭게 하지 않으니 쓸만하다 . ” 중궁이 말했다 . “평소 신중하고 일처리는 소략하게 하여 아랫사람을 다스린다면 참으로 괜찮지마는 평소 신중하지 않고 일처리까지 소략하다면 아마도 지나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 ”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옹의 말이 옳다 . ” 6.2.  仲弓 問 子桑伯子 .  子曰 :  “ 可也簡 . ”  仲弓 曰 :  “ 居敬而行簡 ,  以臨其民 ,  不亦可乎 ?  居簡而行簡 ,  無乃大簡乎 ? ”  子曰 :  “ 雍 之言然 . ”   한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나름의 결과를 머리속에 잘 정리해 놓으면 의견을 전할 때 간결하고 쉽게 잘 전할 수 있다 . 반대로 고민한 적도 없는 안건을 굳이 - 안해도 되는데 - 설명할라치면 설명도 번거롭고 설득력도 없다 . 낙하산 타고 자신의 경력과 관련도 없는 공기업의 윗자리에 앉게 되면 애초 아는 것이 없으니 심각히 고민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 아랫사람의 일은 번거롭고 효율도 떨어진다 .   ‘ 경 敬 ’ 에 대하여   주희는 경 敬 을 똑부러지게 설명한다 . 경은 ‘ 다만 두려워하는 것 ’ 이라고 . ‘ 두려워하라 .’ 중국 사상사에서 ‘ 경 ’ 이 도드라지게 등장한 것은 주공에 의해서다 . 주공은 전설 상의 인물이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인물이며 그의 말과 행적은 동시대 청동기의 명문에서도 , 또 『상서』중에서도 신뢰할만한 서주 초기의 ‘ 고 誥 ’ 편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 고편들은 대부분 주공이 형제들에게 , 또 함께 주나라를 일군 공신들에게 행한 연설인데 , 그의 연설을 포고문의 형태로 반포했기 때문에 ‘ 고 ’ 라고 부른다 . 글자 '경敬'의 자형 변화   그의 포고문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어휘 중의 하나가 ‘ 경 ’ 이다 . 뜻은 역시 ‘ 두려워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