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원사가 재宰로 일하게 되었다. 곡식 900의 급여를 지급하였더니 사양하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양하지 말라! 가지고 가서 네 이웃과 향당에 드릴 수도 있지 않느냐!”
6.5. 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子曰: “毋! 以與爾鄰里鄕黨乎!”
2012년 MLB와 NPB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박찬호가 특례로 국내 프로야구계로 복귀할 때였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라는 특례로 복귀 자체는 성사되었지만 막상 그의 연봉을 놓고 한화 이글스는 비록 그가 전성기는 지났지만 국내 프로야구의 상징적인 인물인 동시에 레전드인 그의 연봉을 책정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며 여기저기 언론에 일종의 떠보기를 시도했다. 이러쿵저러쿵 하는 언론을 보다못한 박찬호는 최저 연봉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에 한화 이글스는 그에게 ‘주려고 생각했던 6억 원’을 유소년 야구발전기금으로 내놓기로 결정한다. 평소에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지막을 장식했으면 좋겠다라는 의사를 표현했던 그는 연봉이 국내 복귀의 관건도 아니고 또 선의의 뜻으로 결정한 일이었겠지만 선례로는 절대 좋지 않은 결정이었다. 선의를 선의로 생각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음을 알았어야 한다. 그의 선의의 사례를 일종의 판례처럼 강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지 대선 출마자에게 재산의 사회 환원에 대한 생각을 강제로 감초처럼 집어넣는다. MB도 여하튼 꼼수를 부려 재단을 설립해서 출자했다. 그 재단의 지배구조, 이사회 구성원에 대한 문제나 재단의 설립 목적에 따른 업무의 실제 수행 역할에 대해선 여전히 말이 많다. 대선 출마자에게 재산의 기부를 강요하는 이런 사회 분위기도 좋은 선례는 아니다. 하기싫은 일을 여론을 등에 업고 억지로 시키는 행위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쓸 데도 없다. 애초 그럴 의사가 없는 인물은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얕은 편법만 동원할 뿐이고 실망은 국민의 몫이다. 위선을 강요하는 사회는 되지 말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여기서
‘제가’의 ‘가’를 오늘날의 단출한 소규모 가정으로 해석하면 매우 곤란하다. 고대
중국의 ‘가’는 그런 자그마한 가정이 아니다. 노나라의 최고 권세가 ‘계씨’를
사례로 들어보자. 계씨의 시조 계우는 환공의 아들이다. 그의
위로 적장자로서 환공의 뒤를 이은 장공이 있고 경보와 숙아는 형님이다. 경보가 맹씨, 숙아가 숙씨의 시조의 시조다. 이들이 삼환씨(환공에게서 갈라져 나온 세 씨족의 뜻)다. 계우는 왕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별도로 가문을 이루어 독립하는데 성은 노나라 왕의 성인 ‘희’이고 씨는 그의 자였던 ‘계’를 따른다. ‘성’이 ‘씨’보다 상위의 체계이다. 성과
씨의 구분은 춘추전국시대 이후로는 소멸한다.
| 주나라의 종법 |
계씨는
군주에게서 여러 개의 성읍을 받아 사유했고 왕실처럼 계씨 가문의 후계자가 있으며 그 아래 수많은 직계 및 방계의 우두머리다. 이 후계자를 ‘종자’라
부른다. ‘제가’, 즉 가를 다스린다는 말은 이 종자가 마치
왕처럼 자신의 가문을 무탈하게 이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다시말하면 당시의 ‘가’란 나라 안의 ‘작은
나라’이다. 공자의 시대 계씨는 왕실보다 막강한 권력, 더 많은 자산, 더 막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 이 ‘가’를 공식적으로
해체하고 해체시킨 인물이 전국시대 진나라의 상앙이며 그의 변법이다. 왕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저들 대가문이 대규모의 토지와 세력을 기반으로 존재하는 한 중앙집권적인 왕의 권력을 바라기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재宰’는 일률적으로
집사로 해석하기 어렵다. 왕에게 재상이 있듯, 거대한 가문에도
종자의 뜻을 따라 실무를 지휘하는 ‘재’가 있다. 전체 가문의 재가 있고, 예를 들면 계씨의 소유인 비읍의 업무를
관장하는 ‘읍재’가 있다.
소유한 읍이 여러 개라면 ‘재’ 역시 여러 명이고
그 아래엔 국가의 국방장관 사마처럼 그 집안의 사병을 지휘하는 사마도 있다. 나라를 위해 군주를 위해
축원하는 축사가 있듯 집안에도 축과 사가 있었던 것이 당시의 ‘가’이다. 그러므로 ‘수신’과 ‘제가’의 고리가 끊긴 것은 이미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관련 주석】 포함: “제자 원헌原憲이다. 사思는 그의 자이다. 공자가 노나라의 사구가 되었을 때 원헌을 그의 가읍재로 삼았다.” ◉ 정현: “다섯 집을 린鄰, 다섯 린, 즉 25가를 1里, 12,500가, 즉 25당을 향鄕이라고 하고, 500가를 당黨이라 한다.” ◉『정의』: “노나라의 사구는 곧 대부이다. 대부는 반드시 그의 채읍이 있는 법, 대부를 가家라 칭하므로 원헌은 대부가 된 공자의 가읍의 일을 도맡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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