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선생님께서 중궁에 대해 말씀하셨다. “밭가는 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도 바르다면 비록 희생으로 쓰지는 않더라도 산천의 귀신이 그 녀석을 모른
척하겠느냐?”
6.6. 子謂仲弓曰:
“犁牛之子, 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
춘추시대의
제사는 전쟁과 함께 국가의 대사 중 하나로 꼽힌다. 제사에 희생으로 사용되는 소도 엄격한 기준으로 선택했다. 얼룩소는 여기서 제외된다. 엄격하게 선별된 소라도 길러지는 중에
뿔이나 몸에 상처가 생기면 다른 소를 점을 쳐 선택했다. 『좌전』에는 희생으로 선택된 소의 뿔을 쥐가
갉아먹어 다시 점을 쳐 소를 선택해야했던 기사도 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도 이집트 이시스 여신의
축제에서 소를 잡아 제를 지내는 장면을 직접 보고 서술한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잔인해서 여기에 쓰지는 않는다.
| imagining of a procession for Isis, complete with Her shrine; art by Frederick Arthur Bridgman, mid 1800s |
일하는 소. 공자
당시에 소를 농업에 활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나라 이전 은/상나라 시대에 소의 주 용도는 제사의 희생과 귀족 계급의 단백질의 원천이었지 농경에 활용하지는 않는다. 당시엔 희생이든 육류든 잡고난 소의 어깨뼈는 거북의 껍데기와 함께 점치는 도구로 활용했을 뿐이다. 복사에 소 백 마리를 희생으로 썼다느니 하는 내용을 봤을 때 처음에는 아까운 트랙터를 낭비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소를 농경에 쓰려면 철제 농기구가 있어야 가능하다. 『좌전』에
등장하는 당시의 상투어 ‘육식자’ 즉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란
귀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 환공의 침략을 목전에 둔 노나라에서 지방에 머물던 조계/귀(사마천은 ‘조말’로 쓰는)라는 인물이 간언할 때 이웃이 핀잔을 준다. 높은 사람들 일에 뭣하러 끼어드냐고. 조계는 ‘육식자’들의 생각은 고루해서 이러다 나라가 망할까 걱정되서 할 수
없이 참견하는 것이라고.
| 정국거 |
전국시대
철기 농기구와 우경은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지만 이를 ‘농업혁명’이라
불릴 만큼의 수준이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전국시대 농업 생산량의 증대는 철제 농기구에 기인한 것만 아니라
철제 도구로 관개시설 등의 인프라 구축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춘추시대에는 읍과 읍
사이 놀고 있는 땅이 많았지만 그곳까지 물을 댈 수 없어 활용하지 못했다. 이 황무지가 경작지로 변신하면서
전체 생산량의 증대를 가져온다. 기원전 3세기의 진나라 운하
‘정국거’의 개통은 이를 통해 4만여 경의 황무지에 물을 대 그만큼의 토지를 새로 획득한 것과 같은데 5인
가구 기준 20만 명이 먹고 살 수 있는 새 경작지를 마련한 것과 같다. 거기에 당시의 트랙터라 말할 수 있는 소를 활용하면 농업엔 분명 획기적인 생산량의 증대를 성취할 수 있다. 하지만 소를 보유할 수 있는 농가는 극소수였으므로 부유한 사람들의 생산량이 더 증가하고 자산이 증가함으로써
소득의 양극화가 전국시대에도 중원 여러 나라에서 사회문제로 커졌을 가능성도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전국시대 진나라는 소를 포함한 농기구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이를 농가에 대여했는데 아마 이런 정책에 힘입어 다른 국가와 달리 농가소득의 양극화도
일부 통제할 수 있었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을 수도 있다.
1894년, 위로부터 갑작스러운 명에 의해 소멸된 신분제도는 한국전쟁, 고도
경제성장기 그리고 민주화 투쟁을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은 착시를 낳았지만 고성장 시대가 끝나고 사회의 역동성이 감소하게 되면 다시 ‘출신성분’의
힘이 강력해진다. 어떤 시대, 어떤 사회든지 장기에 걸친
대혼란이 종료되면 안정책을 내놓고 그 속에서 고성장이 마감되면 다시 새로운 ‘신분제’가 자리잡는 것이 정해진 노선처럼 보인다. 그 신분제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 다른 형태로 나타날 뿐이다. 공자와 중궁은 춘추시대 말기 이제 전국시대(Warring Period), 중국 통일을 둔 200년의 본격적인
전란 시대로 들어가는 초입에 서 있던 시대를 살았다. 각 나라는 생존을 걸고 신분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던
그리고 철기 농기구와 무기로 무장하는 고성장 시대를 살고 있었다.
촘촘해진
사회구조로 인해 계층간 이동이 경직되고 신분상승의 기회가 감소하면, 그때까지 ‘나의 잘못’이나 ‘나의
부족’으로 생각하던 대다수가 이것은 더 이상 ‘내가’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시대로 발전한다.
인생이 짧다보니 내 생애엔 절대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산다. 1517년에도, 1789년에도, 1914년에도 대중뿐 아니라 지식인과 정치인들도
지금 자신이 어떤 순간에 서 있는지 까마득히 모른 채 그 날을 맞이했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같은 대부호들이 막대한 재산을 기부하는 이유는 폭력적 혁명을 두려워하는 ‘경’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 주석】 하안: “리犁는 잡색의 무늬를 가진 소이다. 성騂은 털색깔이 온전하게 붉은 것이다. 각角은 소의 뿔이 바르게 자라 있어서 제사에 드릴 희생으로 적합함이다. 비록 그가 태어난 어미는 얼룩소여서 제사의 희생으로 쓰일 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천의 귀신이 어미로 인해 그 자식을 버리지는 않는다. 즉 부모가 비록 선하지 못하더라도 자식의 미덕을 해칠 수는 없음을 말한다.” ◉『정의』: “중궁의 부친은 천한 신분이고 그 행동 역시 선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자는 중궁에게 ‘비유하자면, 얼룩소가 순전한 붉은 색과 바르게 자란 뿔을 가진 송아지를 낳아서 제사의 희생으로 드릴 수 있을 만큼 훌륭하다면 비록 그 어미가 흠이 있다해도 산천의 귀신이 어찌 온전한 새끼를 버릴 수 있겠느냐?’라고 말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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