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애공이 물었다. “제자 중에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안회라는 배우길 좋아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히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이제는 없습니다! 그후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6.3.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생전에
별다른 업적도 없이 스승 덕분에 오늘까지 그 이름을 떨치는 안회는 행운아다. 부럽다.
불천노不遷怒, 북송의
정이천(1033-1107년)은 이 구절에 멋진 해석을 달고
있다.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추니 아름다움과 추함은 피사체에 달려있는 것과 같다. 사물에 따라 대응할 따름이니 어찌 화를 옮김이 있겠는가?” 시적인
표현이다. 자신의 마음은 명경지수와 같아서 그저 외물이 오면 반영하고 지나가면 그만일 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정이천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동시대 왕안석(1021-1086년)이 이끈 신법당과 날카롭게 각을 세우며 그의 정책, 개혁, 사상을 폄하하는데 정력을 쏟은 인물이 정이천과 정명도 형제다. 이렇듯 훌륭하신 분들도 말과 행동은 다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인간적이다.
왕안석은
북송의 사회, 경제, 교육 등의 분야에 방대하면서도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그가 주도한 개혁의 성격을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크고
강한 정부’를 지향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민간의 자율에
맡기는 것을 지양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정부 주도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읽지 않는 책이 없다. …… 농부와 장인에까지 묻지
않는 대상이 없다. 그런 후에야 경전의 일반적 구조와 목적에 대해 의심이 없게 된다. 후세와 선왕의 시대는 다르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성인을 완전히
알 수 없다.” 왕안석은 기존 중국의 정치 철학을 버린 것이 아니다.
경전의 ‘일반적 구조’ 즉 원리 혹은 시스템은
그가 처한 시대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현재의 정치인, 학자들의 문제는 그 다름을
인식하고 일반적 구조를 현실에 맞게 수정하려는 공부를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암기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그의 경제
개혁은 정부가 나서 농민들을 지주로부터 자립시키고, 광대한 유통 및 금융 네트워크를 가진 거대상인이
독점하는 산업과 재화의 유통에 정부가 간여하여 물품 공급과 시장 가격의 안정을 도모했다. 교육 분야에선
과거 시험의 항목에서 시짓기, 암기 과목을 배제하고 국가의 현안에 대한 정책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개혁했다. 또 정부가 공립학교를 곳곳에 설립하여 사립학교의 영향력을 대체하게 한 것이다.
기득권
층의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다. 대상인과 협잡한 정치인, 시와
산문 등 예술의 역할을 중시했던 소동파 같은 문인들 – 예술은 중요하다. 그러나 예술적 재능을 공직자와 정치가의 실무 및 필수 덕목으로 주장한 것엔 동의하지 않는다. - 스스로 성인의 학문을 계승했노라 자부하는 정호 정이 같은 학자들이 손잡고 왕안석의 신법에 저항했다. 이것이 북송 시대의 신법당과 구법당의 투쟁이다.
정이는
아예 ‘성학이 전해지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왕안석이 말하는 성학이란 거짓이고 날조라는 선포에 다름없다. 그는 사망한 형 정호에게 ‘명도’, 즉 ‘성인의 도를
밝힌 사람’이라는 시호를 지어 추증하고, 지방에서 독자적인
세력 – 조선의 거대한 유림을 생각하면 쉽다. 놀라운 것은
21세기에도 엄연히 이런 유림의 잔재가 있다는 사실이다. -을
형성해 정부를 맹비난하고 무시하며 학자로서의 권위는 조정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벗과 동학들의 인정에 의한 것이라며 동지적 공동체 즉 ‘붕당’체제를 확립했다. 그를
계승한 주희가 이 사례의 전형이다. 평생 거만하게 관직은 유지하면서도 조정에 나가 일은 하지 않고 공자로부터
자신에 이르는 ‘도통’을 제멋대로 확립하고 그 도의 계통의
곁가지 나머지는 모두 이단 혹은 거짓 학자로 치부했다. 똑 같은 바퀴자국을 따라가지는 않지만 사람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궤도로 움직이는 것은 맞다.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추니 아름다움과 추함은 피사체에 달려있는 것과 같다. 사물에 따라 대응할 따름이니 어찌
화를 옮김이 있겠는가?” 사람이 밉상이라고 그의 올바른 말까지 싫어할 이유는 전혀 없다.
【관련주석】 하안: “보통사람은 자신의 감정의 기쁨과 분노가 상도를 벗어나곤한다. 안회는 중용에 능하여 분노가 일정한 범위를 넘지 않았다. 천遷은 다른 곳으로 옮김의 뜻이다. 분노를 충분의 그의 중용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쉽게 옮기지 않을 수 있었다. 올바르지 않은 일은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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