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선생님께서 삼가신 것들이 있으니 제사를 앞두고 하시는 재계, 전쟁 그리고 질병 등이었다.
논어.술이.13. 子之所慎: 齊, 戰, 疾.
아래는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인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이시스 축제의 의례 과정을 묘사한 글이다. 희생을 선별하고 이를 제사에서 처리하는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제2권 38-41에 해당한다.
희생으로 사용할 소의
선정: 이집트(천병희의 번역본에선 ‘아이귑토스’라고 쓰지만 편의상 이집트로 쓴다)인들은 황소를 에파포스 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검은 털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황소의 혀를 잡아당겨 특정한 표지가 있는지도 검사하며, 꼬리털도
검사해 정상적인지 살핀다. 모든 검사에 통과한 소에는 황소의 두 뿔에 파피루스를 감고 그 위에 진흙을
칠한 후 사제의 인장 반지를 눌러 봉인한다. 이렇게 봉인되지 않은 황소를 제사에 사용하면 사형에 처한다. 이집트에서 흠 없는 황소와 수송아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관행이지만 암소를 제물로 바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암소는 이시스 여신의 성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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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ining of a procession for Isis, complete with Her shrine; art by Frederick Arthur Bridgman, mid 1800s |
희생을 의식이 진행될
제단으로 끌고 가서 불을 피우고 희생의 머리와 제단에 포도주를 뿌리며 신을 부르고 나서 희생의 멱을 따고 그 다음에는 몸통에서 머리를 잘라낸다. 몸통은 껍질을 벗기고 머리는 저주를 퍼부은 다음 가져간다. 황소의
머리에 퍼붓는 저주는 다음과 같다. “제물을 바치는 우리에게 또는 이집트 전역에 어떤 재앙이 닥치려
하건 그것이 이 머리에 떨어지게 하소서!” 이 관습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어떤 동물의 머리도 먹지 않는다.
제물로 바쳐진 희생의
내장을 꺼내고 불태우는 방법은 제물에 따라 다소 다른데 황소의 가죽을 벗긴 다음 기도를 드리고 나서 위장을 모두 꺼내고 다른 내장과 지방은 몸
안에 그대로 둔 채 다리와 엉덩이와 어깨와 목을 잘라낸다.
그런 다음 황소의 남은
몸통에 깨끗한 빵 덩어리들과 건포도와 무화과와 유향과 몰약과 다른 향료로 가득 채우고 나서 불을 붙이고 불에다 올리브유를 듬뿍 붓는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그들은 단식을 하고 제물이 불타는 동안 가슴을 치며 비탄한다. 애도가 끝나면 사람들은 제물로 바친 짐승의 남겨둔 부위로 잔치를 벌인다.
공자는 왜 ‘제사’가 아니라 ‘재계’를 말했을까? ‘재齊’라는 글자로 제사를 비유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재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대체 글자로 보긴 어렵다. “재란 정돈되지 않은 마음을 정리해서 차분한 마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 … 이렇게 함으로써 신령을 영접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라고「제통」에서 말한다.
“(군주와 그의 부인이 태묘로 향하고 군주는 조계 위에 부인은 동쪽 방 앞에 선다) …… 희생이 운반되어 오면 왕은 그 고삐를 잡아 뜰의 비석에 잡아매는데 이때 경대부가 왕을 돕고 사는 지푸라기를 든다… 왕은 난도鸞刀를 들어 희생의 폐를 잘라 시동에 올린다.”
제사의 근본이 되는 마음가짐을
서술한 『예기』「제통」은 제사를 외면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발하여 마음 속에 형성되는 것이며 마음 속 깊이 신비한 감정을 느끼고 이를
밖으로 적절한 형식을 이용해 표현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공자 이후 제례는 보여지는 의례의 형식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 형성되는 신비로운 감정을 더 중시하고 신령을 영접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강조하고 삼가게 된 것 같다. 희생의 처리를 묘사한 인용글에서조차 유가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군주와
부인이 손수 제례를 올린다’는 인문화된 정갈한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대체로 주나라는 이런 상고 시대 가까이는 상나라 시대의 제례의 원형 중 원초적인 부분을 제거하고 소위 ‘문질빈빈(文質彬彬)’을 중시하는 인문화돤
의식으로 변모한다. 아마 이것이 공자의 ‘나는 주나라의 문화를
따르겠다’는 내용 중의 하나일 것이다.
(참고) 난도는 종묘에서 희생을 베고 끊는 칼인데, 고리에 방울이 있고, 칼 끝에 방울이 있다. 칼 끝에 있는 것은 소리가 궁성과 상성에 맞고, 세 방울이 고리에 있는 것은 소리가 각성·치성·우성에 맞는다.
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 제사의 의례는 중국에서 고대로부터 발달된 의례인데 반해 아쉽게도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중국의 제례는 인문화의 세례를 받은 것 같다. 최소한 춘추 시대부터 이미 인문화의 과정을 거쳐 의례 상의 잔인함 – 현대인의 시각에서 – 은 크게 완화되었고 형식보다 내용, 즉 공자가 강조한 것처럼 사람의 내면 깊은 곳의 감정의 발현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원초적인 제사의 절차는 소멸 혹은 암묵적으로 전문가에게만 전해지고 이를 굳이 상세하게 서술하는 일조차 기피했던 것은 아닐까. 프레이저, 켐벨 등의 책에서 전하는 19세기까지의 아프리카, 태평양 그리고 일부 유럽에서의 제례 등에서 볼 수 있는 원초적 모습이 중국에선 이미 2천년 전 선진 문헌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사실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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