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덕을
함양하지 않고, 배운 것을 탐구하지 못하고, 바른 말을 듣고도
실천하지 못하며, 불선한 것을 고치지 못하는 일, 내 근심거리는
바로 이런 일들이다.”
7.3. 子曰: “德之不脩,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며칠 전 뜬금없이 혜민 스님의 이야기가 화제다. 애초
혜민이 우리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배경은 아마 그의 화려한 학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법정스님께서 무소유가 가능하셨던 것은 책 인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도나 주지에게 아쉬운 소리 안해도 살 수 있어야, 그리고 또 어느 정도 베풀 능력이 되어야 아이러니하게도 무소유도 가능해진다.” 2011년 3월 6일 혜민의 트위터.
음… 혜민 이 분은 자기 변명에 뜬금없이
법정 스님을 끌어와 맹자의 분류 기준에 따르면 평범한 소시민으로 깎아내리고 있다. 맹자는 사士 이하의 사람들, 그러니까 나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항산’ 즉 일정한 생산 수단과 소득을
가져야 사람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양심, 즉 ‘항심’을 지키며 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같은 보통사람은 아는 것 하나도 마음으로 굳게 지킬 용기가 부족하기에 먹고살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덕이 비범한 사람들은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본다. 혜민은 공부를 좀 남달리 잘했던 보통의 덕을 가진 사람이었고 애초 불교라는 종교도 비즈니스 마인드로 입문했을
지도 모르겠다. 입문을 했지만 덕을 함양하지도 배운 것을 탐구하지도 바른 말을 실천하지도 잘못을 개선하지도
않은 채 장장 10여년의 세월을 누리꾼들하고 싸우고 있다니.
【관련 주석】 “배움은 반드시 탐구한 후에야 이치가 명확해진다. 혹자는 강을 습習의 뜻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면 독서와 예를 익숙히 하는 것, 친구 간에 함께 토론하는 것 역시 ‘강’이라 할 수 있다.” (전목, 『논어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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