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선생님께서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유가 되거라, 소인유가 되지 말고.”
6.13.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오늘날 ‘학’을 행하는 사람은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문을 잘하는 사람은 ‘문사’이고, 경전을 논하는
사람은 ‘강사講師’이다. 도를 아는 것만이 ‘유학’이다." (『이정집』 권6, 95)
신유학자들은 자신들이 ‘참’이라고 믿는 바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합치시켰다. (피터 K. 볼, 134쪽) 그러니까
‘방자하게도’ 내 방식으로 깨운친 것만이 공자님의 참된 ‘도’이고 나머지는 엉터리라는 말과 같다. 송나라가 멸망하고 관의 주도로 전 시대의 사서를 편찬할 때 기존의 『유림전』,
『문원전』 외에 『도학전』을 새로 추가해 정호 및 정이가 제시한 새로운 유학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는데 이는 당대의 역사가들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첫째, 신유학은 전통적인
유학과는 다르다. 둘째, 유학자로 불릴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신유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피터 138쪽) 이거 사관들이 신유학자들을 ‘왕따’시킨 것 아닐까.
‘군자’는 글자만 보면 ‘군주(제후)의 아들’ 같지만 『좌전』이나 『춘추』에서 군주의 아들은 ‘공자公子’로 쓰지 군자로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군자란 어휘가 공자가 만들어낸 신조어는 아니다. 『시』에는 자주 등장한다. 대체로 귀족의 신분에 있는 인물을 군자라 부를 수 있다. 공자가 한 일은 이런 신분제 용어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은 작업이다. 신분의 고리를 끊고 도덕적 품성을 갖추고 공직자로서 실무 능력을 겸비한 이들을 그는 새로운 시대에서 역할을 수행할 군자라 명명했다. 공자가 사용했던 어휘 중 상당수는 과거에 존재했던 ‘명칭’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은 것이 많다. ‘인仁’이나 ‘예禮’도 없던 글자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은 것이다. 이런 작업은 사상사던 기타 학계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어릴 때 플랫폼하면 당연히 기차역, 헤어짐 등의 이미지가 연상되었지만 오늘날 ‘플랫폼’하면 유투브, 아마존, 네이버, 카카오, 네트워크 효과, 이런 것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이젠 헤어짐이 아니라 글로벌 유저들의 ‘만남의 장’으로 변했다.
“군자이면서 어질지 못한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소인이면서 어진 사람은 아직 없었다.” (14.6.) 공자에게 ‘군자’는 곧 ‘인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유가의 이상적인 모델로 해석할 수는 없다. ‘군자’는 여전히 과정 속에 있는 존재다. 아마 ‘인’을 목표로 삼고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인물인데 이 사람은 개인의 득도를 목표로 삼지 않고 현실에 적극 참여하여 정치를 통해 ‘박시제중’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논어』가 ‘학이편’을 첫장으로 삼고 다음에 정치를 주제로 한 ‘위정편’이 오는 이유 역시 초기 유가에 있어 관건은 배우고 배운 것을 정치에서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도닦고 재야에서 시비나 거는 그런 공부는 공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차선일 뿐이다. 본문의 군자유는 새롭게 정의된 ‘군자’로서의 유를 의미하고, 소인유는 타인의 관심과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안달난 관종의 일종이다.
【관련
주석】 『정의』: “선왕의 가르침을 널리 배워 자신을 윤택하게 하는 사람을 일러 모두 ‘유儒’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군자는 배워서 그것을 더욱 밝게 하는 반면 소인은 자신의 재능과 이름을 떨치는 것을 좋아한다.” ◉전목, 『논어신해』: “공자가 말한 ‘소인유’를 미루어보면 두 가지 뜻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나는 책에빠져서 마음 속에 세상의 도리를 잊는 것이고, 하나는 오로지 자구를 훈고하는 데만 힘써서 전체적인 뜻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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