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축타와
같은 말재주는 없이 송조같은 외모를 가져서는 화를 면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6.16. 子曰:
“不有祝鮀之佞,
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두 사람 모두 공자와 동시대 사람이다. 송조는 송나라 귀족인데 위 영공의 부인 ‘남자’(그녀도 송나라 출신이다)가 시집오기 전부터 사통하던 사이였다. 영공이 늙어서 잠자리에서 부인을 만족시킬 수 없었는지 친히 송조를 불러들여 부인에게 주었다. 사단은 영공의 태자의 사행 길에서 발생했다. 송나라 근교를 지나가고
있던 태자는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수치심에 어쩔줄 몰랐다.
“네 발정난 암퇘지는 이미 안정을 찾았는데 어이하여 내 수퇘지는 돌려주지 않는가?”
농부들은 위나라의 영부인을 발정난 암퇘지로, 송조를 그녀의 성욕을 만족시키는 수퇘지로 희롱하며 놀리고 있었다. 화가
치민 태자가 따르던 시종에게 명령했다. 내가 부인을 접견할 때 나를 따라와 내가 고개를 돌려 신호를
보내거든 즉시 그녀를 죽이라고. 시종 희양속은 그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부인의 위세가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눈치를 챈 남자가 밖으로 뛰쳐나가며
태자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외쳤고, 태자는 송나라로 도망쳐버렸다.
이 여인 남자는 그렇다, 공자와
썸을 탔다고 사마천이 묘사했던 바로 그 여인이다. 당시의 이 썸은 위나라 도성에 소문이 났는지 자로까지
이 풍문을 듣고 하필이면 저렇게 품행이 좋지 않은 남자를 만났냐고 스승에게 따져 물은 대화도 『논어』에 있다.
스승의 스캔들을 고대로 적어 후대에 전한 제자들도 신통방통하다. 대체로 새로운 위대한 사상을 개창한 시조에 대해서도 초기에는 그의 나약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숨기지 않는다. 첫째는 그에 대한 교조화가 덜 진행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속일래야
속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숨길 도리가 없다. 그래서 살붙이고 사는 이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다면 그가 성인이라는 옛말도 있다. 공적인 자리에선 정제된 언행을 보이는 사람도 사생활에서까지 그런 엄격한 태도를 줄곧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인간으로서의 본래 욕구도 있지 않느냐 말이다. 예전에
읽은 글에, 퇴계 선생에게 시집가는 딸을 둔 친정 엄마가 무척이나 걱정했다고 한다. 저 글이나 읽은 서생이 방중지사를 알까 하고. 얼마 후 딸을 만난
어머니가 물었더니 딸이 말한다. ‘밤에는 아주 개입디다.’ 칭찬이다.
성서의 신약도 후대에 ‘정경’이 확립되기 전까지는 현재는 ‘외경’으로
취급받는 복음에 지금의 성서에서 보지 못하는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들이 많이 보인다. 또 중세 유럽의
한 어두침침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는 ‘희극’의 존재를 둘러싼 미스터리 걸작 『장미의 이름』 역시 후대에 교조화된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들이 벌인 한판의 스릴러다. 요즘엔 송조 같은 외모나 축타 같은 지식과 유능함이 있다 해도 ‘기레기’를 견딜 재간은 없다.
【관련
주석】 공안국: “녕佞이란 말쏨씨가
좋음이다. 축타祝鮀는 위나라
대부 자어子魚인데,
당시 사람들이 말쏨씨가 좋은 그를 높이 여겼다. 송조는 송나라의 미남으로 음란함을
좋아했다.” ◉『정의』: “당시에 언변에 뛰어난 사람을 높이
여겼던 사실을 말하고 있다. 송조는 송나라의 미남이다. 음란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싫어하던 것이다. 즉 축타와 같은 언변이 있다면 높임을 받겠지만 만약 그런 언변은
없고, 송조와 같은 미모만 있다면 당시와 같은 세상에서 화를 피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왕인지: “‘而’는 ‘與’와 같다.” (이 경우 축타의 유능함, 송조의
미모가 없이는~으로 해석)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