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평균을
넘는 자질을 가진 이에겐 상등의 것을 말해 줄 수 있고, 평균 이하의 자질을 가진 이에겐 상등의 것을
말할 수 없다.”
논어.옹야.21. 子曰: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어떤 이가 공자에게 농사에 대해 묻자 대답했다. 농사라면
나보다 농부가 더 잘 알고 있으니 거기 가서 물어보라고. 차별을 말한 것이 아니므로 괜스레 (논어.6.21.)의 말에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처럼 수학에 관한
한 엉터리에게 어려운 미적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달리 좋아하는 것은 따로 있으니 그것 열심히
하면 된다.
한 4년 전인가, 오스트리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세계테마여행 시리즈의 오스트리아 편을 시청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에서 여행을 이끌어가는 가이드는 오래 전 그곳에서 음악을 공부했던 성악가였다. 어딘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할슈타트 부근의 호수였던 것 같다. 그는
여행지를 소개하고서 보트를 타고 호수로 나가려고 보트 대여점을 찾았다.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셔서 지금
보트를 몰 사람이 아이밖에 없다고 하신다. 그 아이도 제법 잘 모니까 괜찮다고 하시면서 부르는데 웬걸, 우리 윤서 만한 어린애다. 가이드도 놀랐지만 여하튼 올라탔고 아이가
운전하는 보트는 능숙한 운전자가 모는 듯 호수 안쪽으로 미끄러져 물결을 치고 나간다. 제법이다. 성악가는 보트 안에서 아이와 얘기를 나눈다. 어린 나이에 보트를
몰게 된 이유라든지…. 그랬더니 아이가 대략 이렇게 말한다. 아빠
엄마가 모두 선장인데 지금 두 분 다 이 호수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몰고 계신다고. 그러면서 마침 멀리
지나가는 유람선을 가리킨다. 어릴 때부터 배를 운전하는 엄마 아빠가 멋있어 보여서 배우기 시작했고 나도
커서 엄마 아빠처럼 이 호수의 큰 유람선을 모는 선장이 될 거라고.
이 지점에서 한국산 라떼라면 아이에게 충고할 것이다. 더 큰 꿈은 없냐고, 엄마 아빠가 설마 너 유람선 몰라고 저렇게
‘힘들게’ 일하고 계시겠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없냐고. 비엔나로 나가 멋있고 번듯한 직장인은
어떻겠냐고, 그리고 엄마 아빠도 배를 운전하는 일은 싫어하실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말이다.
무의식의 세계를 점술이나 해몽이 아닌 학문의 영역으로 이끈 프로이트는 죽을 때까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에 대한 두려움 등을 자신이 기초한 학문의 기반으로 삼았다. ‘자아’나 ‘초자아’ 등은 그의
학문에서 후기에 등장한 개념들이고 프로이트의 사상에서 핵심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프로이트에게 ‘자아’는 ‘이드’의 한 부분에서 발생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죽자 반전이
일어나 그의 딸 안나와 제자 하인츠 하르트만 등은 이렇게 중요한 ‘자아’가 ‘이드’의 일부부일
수가 없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자아’에게 ‘이드’에서 벗어난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여했다.
후학들은 무의식이 아닌 ‘자아’를 중시했고 미국에서 ‘자아심리학’으로
꽃피우게 되었다. 이후 심리학 치료는 자아를 강화하는 쪽으로 진로를 바꿔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환자들은
모두 자아가 약하기 때문이므로 자아를 계발하고, 자아를 강화하는 방면으로 심리 치료를 진행한다.
이 ‘자아심리학’은 환자뿐 아니라 일반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성공하려면
자아를 강화해야 한다, 자아의 강화는 자아의 계발에 있다, 결국
자아 계발은 인간을 성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된다.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고 –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과
유사하다. 발견이라기 보다는 학문의 차원에서 새롭게 인식한 것이다 –
무의식을 강조했던 프로이트는 사라지고 그렇지 않아도 경쟁적인 인간을 더욱 치열한 경쟁 속으로 몰아넣는 ‘자아’가 학문의 기본이 되었다. 라깡의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는 말은 이런 엉터리 자아심리학은 프로이트의
학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미국식 자아심리학에 빠진 우리는 오늘도 나를 위해,
자식의 성공을 위해 줄기차게 ‘자아 계발’을
목표로 삼아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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