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서술할 뿐 지어내지 않고, 옛것을 신뢰하고 좋아하니 조심스럽게 나를 노팽에 견준다.”
7.1.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구(丘)가 시·서·예·악·역·춘추 등 육경을 다루면서 제멋대로 이는 오랜 전통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옛것임을 누가 안단 말인가?” (『장자』「천운」)
공자나 유가에 대해 시니컬했던 장자도 그가 『춘추』를 다루었다고 얘기한
것을 보면 공자가 『춘추』를 편집했다는 전통의 주장을 굳이 부인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현대 학자들은 부정할까. 그분들은 원사료와 편집된 저서를 구분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조선왕조실록』의 편찬은 왕 재위 당시 사관들이 기록한 ‘사초’를
기본 자료로 삼아 왕의 사후에 명망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편찬위원회에서 실록을 완성한다. 사관은 사초를
생산하고 편찬위는 실록을 완성한다. 『춘추』 역시 노나라 사관들이 기록한 사초, 즉 『노나라춘추』를 토대로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저자, 즉 역사가는 편찬자의 지분이 더 크다. 원사료인 사초는
왕의 언행과 국정을 가감없이 기록하는 것이 미덕이다. E. H. 카는 역사를 서술하는 자의 특권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이며, 그 서열이나
차례는 어떻게 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바로 역사가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문예출판사, 22쪽) 그러므로
실록의 저자는 편찬위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옳다.
노나라의 역대 사관들이 남긴 수많은 사초 중에서 어떤 사실과 사건을
기록에 남겨 발언권을 줄 것인지, 선택한 사건의 장본을 어떻게 설명하고 결정한 지, 다수의 제후들이 회합을 가지고 결맹할 때 어떤 서열로 서술할 것인지, 글자의
변화를 통해 어떤 의견을 개진할 것인 지는 모두 역사가의 몫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서술했을 뿐 지어낸 것은 아니’라고 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역사를 서술하는 자의 특권을 중대하게 인식한 최초의 사람이다.
이 “술이부작”은
분명 누군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질문자가 제자이건 다른 사람이건 공자가 말하는 혹은 가르치는 상고시대의
역사가 사실인가 혹시 지어 낸 얘기는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있었던 것이다.
공자는
내가 하나라와 은나라의 일을 말할 수는 있지만 그 후손인 기나라와 송나라의 문헌이 부족해서 증명하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그보다 먼 세대의 요와 순의 일을 얘기한다. 이는 모순이다.
『춘추』와
마찬가지로 그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상서』는 요와 순의 시대부터 시작한다. 이 책의 편집자(후대 매색의 위『고문상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에 대해 역시 개인적으로
공자를 유력하게 본다. 그리고 첫째 편 「요전」은 명백히 편찬도 아닌 창작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요전」은 편찬자의 저작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글이다. 「요전」은
공자가 이상적으로 여긴 정치, 제도 등이 제시된 명백한 픽션이다. 그런데도
염약거의 엄밀한 논증 속에서도 위작의 의혹을 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편은 『상서』 편집 당시부터 픽션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매색에 의한 위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서』에서 가장 먼 시대의 사건을 기록한 편의 문자나 어법이 가장 가까운 시대의
『주서周書』보다 한결 읽기 쉽다는 점은 오래 전 주희도 의혹으로 지적한 문제다.
신화 속에서
하급 신으로 분류되었던 요와 순은 공자의 요구에 의해 신에서 인간으로 강등되었지만 오히려 모범적인 군주, 이상적인
정치의 모델로 변신한다. 공자가 존경해 마지 않았던 주공이 선택되지 않은 까닭은 그는 시각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실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모델은 완벽해야 한다.
어릴 적
부모님이 어려운 살림에도 책을 많이 사주셨는데 동서양 위인 전기 세트도 그중 하나였다. 열심히 읽고
나중에 좀 커서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위인 전기의 공통점은 날 때부터 비범했다. 보통 서너살이면 천자문을
떼고 대여섯살에 시를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한다. 이에 반해 서양 위인 전기의 주인공들은 비범한 면에선
비슷한데 다소 또라이같은 기질로 비범한 사례가 많다. 그래서 우리 애한테는 한국 위인전은 선뜻 권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공자의 “술이부작”은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선한 거짓말이다. 그가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고군분투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향점과 모델을 제시하기
위한 선한 의도의 발로였다고 나는 이해하고 싶다.
【관련 주석】 포함: “노팽은 은나라 때의 현자로서 옛 일을 서술하기를 좋아했다. 노팽과 비교한 것은 다만 옛 일을 서술하는 측면일 뿐이다.” ◉노팽은 팽성의 시조로서 800년을 살았다하고 이름은 갱鏗이다. 그는 은나라 왕에게 신선이 되는 법, 먹고 노는 법, 여자와 놀아나는 법 등을 가르친 은나라 때의 유명한 양생가이며 한진 시대에 유행한 『팽조경』은 이른바 방중술7경 가운데 하나이다. 또는 ‘우리 노팽’이란 해석도 있다. 공자와 노팽 모두 은/송나라 출신이라는 리링(100쪽)의 설명도 있지만 노팽이 은나라 때의 현자인가, 혹은 노자가 아닌가라는 논쟁은 전혀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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