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자유가 무성武城읍의 재宰가 되었다.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그곳에서 쓸만한 사람을 얻었느냐?” “담대멸명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지름길을 찾지 않고, 공무가 아니면 제 거처를 찾은 적이 없습니다.”
6.14. 子游爲武城宰. 子曰: “女得人焉爾乎?” 曰: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於偃之室也.”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1995년 설립)가 조사하는
분야는 주로 공공 부분 부패의 지표라고 한다. 2019년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27위로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조사
순위를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부패는 해충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람 사는 곳에 부패가 없을 수 없다. 부패는 박멸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박멸되지 않는다고 우울증에 빠질 것까지 없다고 본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부패 역사의 현장을 보는 것과 유사하다. 역사에 등장한 어느 위대한 제국의 멸망의 이유에 부패가 손꼽히지 않는 적도 없지만 사실 그 국가가 고속 성장할 때라고 부패가 없었던 적은 없다. 부패의 박멸을 기대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인지상정이라고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사람이란 자신의 이익을 기대하지 않으면 일할 열정도 그만큼 감소한다. 이런 인지상정을 벗어나 청빈하면서도 위대한 삶을 살아간 이를 우리는 성인이라고 부른다.
에드워드
기번 이후 사람들은 그 강대했던 로마 제국이 왜 멸망으로 치달았는지, 그 과정을 연구하는데 많은 정력을
쏟았다. 결과물도 많고 다양하다. 학창 시절 서양고대사 강의
시험문제로 출제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로마
제국에 대한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멸망이 아니라 성장 배경이다. 그 제국은 기원전 7세기부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서기 5세기까지 1200년을 존속했다.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15세기이며 이것까지 치면 2200년을 존속한 셈이다. 전성기 시절만 따져도 한니발 전쟁 이후 지중해 패권을 차지한 기원전 3세기부터
오현제가 존속했던 서기 180년까지 장장 400여년 넘는
전성기를 누렸다. 이웃나라 중국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건재한 역사의 유일한 나라지만 통일 제국의 총 기간이
400년 넘는 경우도 많지 않고 전성기만 따지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E. 기번이 쇠망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까닭은 그가 대영제국의 전성기 빅토리아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달이 차면 기울까, 어떻게 하면 기울지 않게 할까 노심초사했던 학자의
연구였던 것이다.
사람이
젊고 건강한 시기에는 독감으로 죽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고 노쇠하여 신체의 각 부분이
예전같지 못해지면 독감으로 시작해 여러 합병증으로 발전하고 결국 겨우 감기 하나로 죽음으로 이를 확률이 높아진다.
로마의 멸망은 ‘자연사’다. 연구자들이 어렵게 선택한 멸망 요인들은 그가 건강할 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이민족의 침입은 로마 초기의 역사부터 늘 맞이했던 도전이다. 독재와
군사 정권도 공화정 전복을 기도했던 기원전 2세기 카이사르 때부터 직면했고 내란까지 겪었던 문제다.
부패는
말할 것도 없다. 제국의 식민지가 증가하면서 식민지 총독 자리는 퇴임한 집정관이 한 몫 챙길 수 있는
큰 자리였다. 그중에서도 부유한 아시아 지역의 총독은 호시탐탐 유력한 의원들이 야합도 하고 타협도 하며
노리는 횡재의 자리였다. 그래도 로마는 멸망하지 않았다. 왜일까.
부패도
만연했지만 이를 견제하는 이들도 체제로부터 보호받았고 또 견제하는 이들의 수준이 평민뿐 아니라 귀족 계급에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처럼 군 지휘권과 행정 독재권을 가진 인물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욕을 퍼붓던 소 카토, 다소 연약하나 자신의 장기인 글로 비판했던 키케로, 카이사르처럼
위대한 장군 출신이지만 공화정을 지지하며 독재를 거부한 폼페이우스 같은 견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부패를 억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나 박멸이 어렵다면 견제 장치를 더 키워야 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견제 장치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정부를 비판해야 하는 언론이 대중에게 ‘기레기’ 취급을 받게 된 현실은 언론이라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관련 주석】 『정의』: “무성은 노나라의 하읍이다. (중략) 담대멸명이란 사람의 덕을 논했다. 그는 정도를 걷고 편법을 일삼지 않았으니 올바르다. 공사가 아니면 자유의 집에 찾아오지 않았으므로 이것은 공사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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