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고觚’가 고답지
않으니 ‘고’라 말할 수 있을까! ‘고觚’라 말할
수 있겠는가!”
6.25. 子曰:
“觚不觚, 觚哉! 觚哉!”
당시의 ‘고’에 대한 두 가지 팩트 설명을 보면 본래 고는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모양인데 이를 변형해 제작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용량과 관련해 규정보다 많은 술을 담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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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나라 시대의 '고觚' |
기원전 672년 첫 패자
제 환공은 당시 약소국 진陳나라에서
망명해 온 진완을 융숭하게 대우하고 벼슬을 내렸는데 그로부터 후손들은 제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거대한 세력으로 뻗어나갔다. 진완이 망명한 지 약 130년 후 제나라의 안평중은 진의 숙향에게
나라의 민심이 급격하게 진씨에게 기울어지고 있음을 한탄하고 있다. 안자에 따르면, 진씨는 가난한 이에게 곡식을 빌려줄 때 나라에서 정한 기준보다 더 큰 그릇에 담아 주고, 돌려받을 때는 보다 작은 크기의 그릇으로 받아 민심을 얻고 있었다. 결국
그로부터 다시 80여 년 후 강태공을 시조로 했던 제나라 왕실은 진씨(전씨)에게 넘어간다. 과장하면 ‘도량’ 하나로 ‘나라’를 빼앗은
것이다.
내용/실제가 이름에 부합하는
것이 ‘정명’이다. 우리
일상에서 명과 실에 신뢰가 없다면 보통 사람들은 살기가 고달파진다. 고등학교 시절에 겪었던 웃픈 얘기다. 어머니가 가구를 새로 장만하시겠다고 하시길래 무심코 내 짝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 부모님이 가구점을 하셨기 때문이다. 친구에게도 말하고 주말에 어머니와 함께 친구 아버지의 가게로
갔다. 이것 저것 둘러보시다 하나가 맘에 든 어머니가 가격을 물었다.
친구 아버지, “삼백입니다.” 들은 체 만 체하는
어머니, 대뜸 “백!” 외치신다. 학생인 나는 가구 가격에 한 번 놀랐고 2/3를 후려치는 엄마에게
또 놀랐다. 아랑곳하지 않고 두 분은 다시 네고에 들어가 150으로
결론이 났다. 한 편은 깎을 것이란 ‘확신’에서 애초 높게 부른 것이고 다른 한 편은 크게 부를 것으로 ‘확신’하고 값을 반토막 낸 것이다. 두 분 다 ‘아들의 친구’라는 것은 애초 염두에 없다. 세상사는 이렇게 속고 속이는 것이고 에누리 못하면 바가지라는 현실을 가르쳐 주실 뿐이다.
공자는 말한다. “이름은
한 사람의 위신을 드러내고 그 위신에 따라 지닐 수 있는 기물이 있으며 기물은 예를 드러낸다.” OO답게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같은 범죄라도 저지른 대상이 어떤 ‘이름’을 가졌느냐에 따라 보통 사람보다 더 가혹한 판정을 내린다. 어떻게 언론인이, 어떻게 판사가,
어떻게 검사가, 어떻게 고위 공직자가, 어떻게
선생님이….
그러므로 군자는 말한다. “이름을 신중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이와 같다. 한 때 명성(이름)을 얻는 일이 없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 … 행동할 때 예를 생각하고, 행동할 때 의를 염두에 둔다. 이익 때문에 예를 어기지 않고, 의를 생각하여 우환을 만들지 않는다. 어떤 이는 명성을 구하나 얻지 못하고, 어떤 이는 이름을 숨기길 원하나 이름이 드러나니 불의를 징벌한 것이다.” (좌전.10.31.5.)
【관련
주석】 마융: “고觚는 예기이다. 용량이 일승一升인 것을 작爵이라 하고, 이승은 고라 한다.” ◉하안: “고가
아니라는 것으로 당시의 정치가 올바른 길을 잃어 성취를 낼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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