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선생님께서 부인 남자를 접견하시자, 자로가 마뜩치않게 여겼다. 부자가 맹세하고 말씀하셨다. “만약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6.28.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연세 지긋하신 선비님 중에 사마천을 저주하는 분이 계시는데 공자가
남자를 접견하는 장면에 ‘소설’을 삽입했다는 것이 그의 죄목이다. 아래 해당 부분 사마천의 기술을 봅시다.
위 영공에게는 남자南子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사람을 시켜 공자에게 일렀다. “과군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방의 군자들은 반드시 소군을 만나는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과군의 부인께서 뵙기를 원합니다.” 공자는 사양했지만 부득이하여 접견했다. 부인은 휘장 안에 있었다. 공자가 문을 들어가 북쪽을 향해 절을 하자 부인도 휘장 안에서 답례했는데 이때 허리에 찬 구슬 장식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사기·공자세가』)
굵은 볼드체로 쓴 부분이
바로 문제의 대목이다. 남자를 접견한 사실은 제자들도 기록을 남겼으니 시비를 걸 문제는 아니고 사마천이
멋대로 저런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하여 뭔가 썸씽이 있었다는 걸 암시했다는 것이 마뜩치 않으신게다.
문헌에 전해지는
공자의 외모는 장군감이다. 서생이 아니다. 키는 2미터를 넘는 장신이고 그의 부친 숙량흘은 전쟁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성문을 홀로 삼손처럼 쳐받쳐 궁지에 몰릴 뻔한
병사들을 구제한 에피소드가 『좌전』에도
보일 정도다.
신하된 사람이
군주의 부인을 접견하는 예가 애초에 없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좌전』엔 손가락으로 꼽기엔 너무나 많은 부인(춘추시대에 문헌의 ‘부인’이란 군주의 부인을 말한다.)과
외간 남자들간의 애정행각 기록이 있다. 춘추 4대 미녀로
손꼽히는 여인들은 모두 스캔들이 있다.
1.
문강(남매간통): 제나라 여인이며 노나라 환공에게 시집을 갔다. 그런데 그녀는 결혼
전부터 남매지간인 제 양공과 정을 통했던 사이였는데 출가한 그녀를 잊지 못한 양공이 환공을 국빈으로 초대해 놓고 간통하다가 이를 눈치챈 환공을
죽여버렸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문강은 양공과 노나라에서 제나라에서 만남을 지속했고 죽을 때까지 관계를
지속했다.
2.
선강(신랑이 뒤바뀜): 문강의 자매다. 본래 위나라의 태자가 신랑이었지만 가서 바뀌었다. 그녀의 미모에 홀딱 빠진 선공이 아들의 부인될 여인을 빼앗아 자신의 처로 삼았다.
3.
식규(남편이 바뀜): 뒤의 ‘규’는 그녀의
모국이 진陳나라임을 드러내고, 앞의 ‘식’은 그녀가 식나라로 시집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기호다. 그녀의 빼어난 미모를 전해들은 초 문왕은 식나라를 정벌해 멸하고 그녀를 부인으로 취했다. 그럼에도 식규는 『열녀전』전에 실릴 정도로 현명한 부인으로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식나라가
망한 것은 그녀의 잘못만은 아니니.
4.
하희(혼음): 실로 문제의 여인이다. 정 목공의 딸인 그녀는 진陳나라 귀족에게 시집갔지만 군주와 신하들이 함께 그녀와 간통하고 조정에서 서로 그녀의 속옷을
흔들며 희롱하고, 심지어 그녀의 아들 하징서의 얼굴이 서로를 닮았다며 놀린다. 결국 하징서는 군주를 죽이고 나라를 빼앗았고, 초 장왕의 하징서
토벌로 하희는 초나라로 끌려가 하마터면 장왕의 부인이 될뻔 했는데 이미 하희를 점찍은 신공 무신이 온갖 교묘한 말로 방해하며 이를 막은 후 결국
자신이 그녀를 취한다. 미녀를 얻은 대가는 초나라를 떠나 망명하는 것이었다.
비단 이런 간통이
아니더라도 부인들과 첩들은 유력한 총신들과 결탁해 자기 아들을 후계로 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자로가
마뜩치 않았던 것은 군주의 부인을 접견한 자체가 아니라 하필이면 남자냐는 것이었다. 그녀는 송조라는
미남과 염문을 뿌려 “네 발정난 돼지는 이미 안정을 찾았는데, 내 수퇘지는
왜 돌려주지 않는가?”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당대에 요부로 소문난 여인이다.
자로의 불만에 공자는 대답한다. “吾郷為弗見, 見之礼答焉.” 사마천이 기술한 변명 중 밑줄 친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공자는 사양했지만 부득이하여 접견했다. … 애초 접견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를 접견한 까닭은 예에 따라
답해야 했기 때문이다. 노나라의 건방진 평민 출신 권력가 양호가 공자를 보려 했지만 공자가 거절하자, 양호는 꾀를 냈다. 큰 선물을 보낸 것이다. 당시의 예에 따르면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찾아가 감사를 표해야 한다. 고민하던
공자는 그가 집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때를 잡아 찾아갔다. 없으면 그만이니. 그런데 그럴줄 알았던 양호는 내내 집에 머물렀다. 결국 공자는 양호를
접견할 수밖에 없었고 양호는 공자에게 함께 반란을 일으켜 삼환씨를 몰아내자고 꾀었지만 공자가 거절한 일이 있다.
아마 공자란 인물이 궁금했던 남자도 자신을 피하는 공자를 위해 이런 방법을 썼을 지 모른다.
【관련 주석】 양백준: “‘予所否者’의 ‘소’는 가정을 나타내는 연사인데 맹세문에서만 이런 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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