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怪力亂神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물처럼 활동적이고 인자는 산처럼 고요하다. 지자는 삶이 즐겁고 인자는 천수를 누린다.”
6.23.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첫번째 생각. ‘물’은 바다일까, 노나라를 관통하던 기수 같은 하천일까? 공자는 바다를 본 적이 있을까? 바다에 뗏목을 띄운다면 나를 따를
자 자로일 것이라고 했던 말을 보면 바다를 알긴 한 것 같지만 실제 바다를 본 적이 있을까? 같은 물이되
하천과 바다를 보고 느껴지는 감성은 다르다. 유유하게 흐르는 한강을 보며 느껴지는 감성과 때로 집채만
한 파도가 매섭고 거대하게 밀려오는 동해에게서 전달되는 감성이 같을 리 없다.
공자가 말하는 물은 오르도스로부터 수직으로 내리꽂듯 거대한 바위덩어리 화산을 치받다가
결국 물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양진 사이의 황하보다는, 또 뚫기를 포기한 황하가 넓은 강폭을 유지하며
유유하게 중원 평야를 흐르다가도 때가 되면 주변을 폐허로 만드는 심술궂은 황하도 아닌 것 같다. 가끔씩
제자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던 기수(오늘날의 기하인지 소기하인지는)의
정서를 가진 관념 속의 물이다.
두번째 생각. 지혜로운 사람과 인한 사람에는
등급의 차이가 있을까? 지자는 인자라는 최상의 등급으로 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일까? 아닌 것 같다. 이 둘은 별개의 캐릭터를 가진 인격체이고 지자 역시
나름의 경지를 터득한 인격체다. 공자에게 지자와 인자는 모두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고 각자의 특징을 물과
산에서 느낄 수 있는 감탄으로부터 끌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인자가 지자가 되기도, 지자가 인자가 되기도 싶지 않다. 고요한 속성의 산은 다이내믹한
물이 되기 어렵고 물 역시 산이 되기 어렵다.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로다.’ 웁스~. 설마 그 분의 말씀이 이런 뜻이었나?
내가 아이 하나를 키우고 근처의 조카들까지 총 다섯을 태어났을 때부터 가까이서 지켜보며
관찰한 결론은 겨우 만 두 살 정도만 되어도 각자의 캐릭터가 명확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다섯은 이미
그 나이에 다른 속성을 가지고 각자의 삶을 살 것이다. 말을 못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을 뿐 아마
태어날 때부터, 아니 뱃속에서부터 이미 ‘기질지성’을 얻어 세상에 나온다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것이 DNA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기질의 본성에 환경의 덧칠이 더해지나
캐릭터를 이루는 코어는 변하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관련 주석】 포함: “지혜로운 사람은 그 재능을 발휘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이 마치 물의 흐름이 쉼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인자의 즐거움은 마치 산이 안정되고 견고한
듯하다. 자연은 미동하지 않지만 만물이 그곳에서 나고 자란다.”, “매일같이 진보한다. 그러므로 ‘동動’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靜’한 이는 대체로 장수를
누린다.” ◉공안국: “사사로운 욕심이 없기 때문에 인자의
마음은 ‘고요靜’하다.” ◉정현: “지혜로운 자는 스스로 힘써 그 뜻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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